말씀묵상

나만의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겨울아찌 2022. 6. 30. 09:53

 

 

지저스로그 01

라이프로그로 쓰던 복음적인 글을 개인적으로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지저스로그" 로 쓰기로...
내가 신학자 중에서 가장 인정하는 사람은 C.S.루이스 이다. 기독교 복음적인 이야기를 하면, 꼭 등장하는 사람이라서, 그의 글을 하나님에 대하여 알고자 할때부터 여러 경로도 단편적으로 접근하기는 했지만, 장황하게 늘어지는 글을 모두 읽고, 그의 글들에서 던지는 메시지를 모두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C,S.루이스의 글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은, 그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상식과 논리, 추론만으로도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내는 글들과 대중에게 알기쉽게 설명하려는 노력, 그리고, 영화등에서도 보여지는 실제 그의 행동이 하나님을 탐구하는 것을 말로만 아닌 행동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점이라고 할수 있다.
그의 글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인정하는 과정에서 그의 하나님에 대한 메시지의 통합본이라고 할수 있는 판타지소설 "나니아 연대기" 에서 보여주는 하나님과 등장인물들이 하나님과 맺는 관계를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책을 접하고, 여러번 읽는 과정에서 C.S.루이스가 보여주려고 하는 하나님에 대하여 발견해 나가기 시작했다.
나니아연대기의 7장 (7권으로 발매된것을 하나로 모은것) 에서 매 장마다 하나님의 모습이 등장인물에 맞추어서 다르게 행하는 것이 표현되며, 나의 믿음의 상태에 따라서, 매번 다른 포인트가 부각되는 놀라운 책이라고 할수 있다.
최근에 성경의 무결성이 깨지고,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서 진화론이 증명되고 있으며, 고대 고문서를 성경이 인용했다고 하는 증거들이 부각되면서, 기독교의 심각한 위기가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정확하게 이야기를 한다면, 성경의 텍스트를 그대로 맹신하도록 이끌고온 기독교 원리주의의 위기이며, 그것을 그대로 받아서, 성도들에게 강요해온 교회의 위기라는 것이 더 맞는 것이라고 본다. 잘 생각해 보면, 성경에서는 어디까지나 비유적으로 표현했으며, 그 비유에 담긴 메시지를 독자가 이해하고, 자신의 삶에서 그 메시지를 적용하도록 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종교의 경전이라는 것이 그렇다)
그러면 왜 성경의 텍스트를 맹신하고, 기독교 원리주의를 따르는 신앙인들이 왜 그렇게도 많이 양산되고, 아직도 교회 성도의 주류를 이루고 있을까? 그것은 생각하는 일이 매우 에너지가 많이 들고, 힘이 드는 일일것이다. 옛날 구어체로 쓰인 성경을 읽고, 그 메시지를 판독하고, 그것으로 나의 행동을 결정하는 행위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내가 생각하는 선택적인 단어 "은혜', "구원", "복" 등에만 꼽혀서, 나에게 유리하게 적용하고 싶은데,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 만 좇다보니, 그렇게 유리하게 설명해주는 목회자만 따른 결과라고 생각한다.
나는 원래 원리원칙 주의자로서, 누군가 하는 말을 맹신하는 사람은 아니고, 오히려 분석하고, 비판하고,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건데? 라는 태도를 보이던 사람이다. 또한, 이해가 안가면, 이해가 갈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다 보니, 성경책도 여러 판본을 읽었고, 최신의 판본은 현대적 언어로 이해하기 쉽게 쓰여진 책들도 많아서, 앞에서 언급한 나니아연대기에서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하나님에 대하여 이해가 깊어진 상태라고 할수 있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이아 연대기에서 하나님을 묘사하는 글중에서, 유대교를 통해서, 전승된 하나님만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는 표현이 꽤 여러곳에서 나온다. 아니.... 7장에서 꼭 한번씩은 언급된다. 나는 이책을 읽으면서도, 루이스가 그렇게 하나님을 표현한것을 이해할수가 없었는데, 오늘 문득 이해가 되는 것을 느껴서 이글을 쓰는 중...

 

제대로 회심한지 20년이 넘고 있는 지금, 하나님은 편협한 하나님은 절대로 아니시다. (ONLY JESUS 의 문자적 표현을 말함) 모든 곳에 존재하시며, 다른 이름으로, 다른 모습으로, 아니...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드러내시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말의 가장 합당한 표현은 "자신만의 하나님을 찾으라" 라는 말일 것이다. 물론 90% 이상의 인류애적인 하나님은 공통이고, 나의 특질과 환경에 맞는 나자신에게 설득되는 특화된 하나님을 찾으라는 말이 되겠다.
남이 이야기 해주는 하나님,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아니다. 목사님들이 강조하는 자신들의 목회적 삶에서 보여지는 하나님과는 특히 거리가 있을수 있다. (일반성도와 목회자들의 삶의 간격 만큼이나 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앞의 서론에서 길게 이야기한, 자신이 이해할수 있는 성경책을 골라서, 그 말씀에서 이야기 하는 메시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나의 삶에 적용할때 그 하나님을 발견할수 있으며, 그때에야 "은혜', "구원", '복" 이 나이게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획득(?)하는 방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버려야 할 태도... 내가 읽고, 발견하고,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 하던 태도를 버려야 한다. 그래서 성경의 중요한 말씀중의 하나 "깨어있으라" 가 진리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과정을 정말 힘들어 한다. 나도 한때 급한 마음에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건데?" 의 답을 강요하고, 주변 목회자들이 하라는 것을 맹목적으로 따라했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모두 처참하게 실패로 끝남)
정말 힘든과정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당신을 구하는 자에게 모든것을 제공하시는 분이다. 오늘 당장 결단하고, 실행에 옮긴다면, 초심자 일수록... 더욱 형통하게 그 길이 열리는 것을 발견할수 있을 것이다.
주변에서 성경필사를 몇번씩 했다는 분을 보곤한다. (나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음) 그러나, 그행위를 강조하는 사람일수록 실제 하나님이 원하는 삶과는 떨어져 있는것을 발견하곤 한다. 복음을 깨닫고 자신의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은, 자기는 자랑할것이 없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라라" (마태복음 6:33)
추신: 이 말씀에서 "더 하시리라" 에 주목하라. "더" 하신다고 했지, 공짜로 주신다고 하지는 않으셨다는 것... 즉... 내가 해야할 몫은 분명이 있다는 표현이다. (나에게 강조하는 글이기도 함)

'말씀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이 보람으로 일한다는 것  (0) 2016.12.14
인생에서 두가지 비참한 일.  (0) 2016.12.14
위대한 기독교  (0) 2011.05.16
'성막' 에 대하여~  (0) 2011.04.14
"경화" 된다는것~~~  (0) 2011.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