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왜 불의한 일이 일어나는가?

겨울아찌 2014. 2. 20. 18:22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왜 불의한 일이 일어나는가?

 

폭탄테러로 인해서, 성지순례를 간 한국인들이 사망한 사건에 대하여, 평소 친분이 있던, 폐친이 이 사건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내가 그런 답을 해줄수 있을 정도로 보였나?) 즉각 답하기에는 나로서도 정리된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말미를 부탁하고, 나 자신을 위해서 정리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본다.

 

그런데, 오늘 출근하면서, 봉목사님의 금주설교 "굳게 믿지 못하면, 굳게 서지 못하리라" 를 두번째로 청취하면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는 것은, '불의한 요구' 라고 힘을 주어 말하셨다.

 

그렇지, 내가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지도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시고, 형통케 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에 대하여, 재 인식하는 말씀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당신의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는 보호하지 않으신다는 말이 되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데, 그럼 그때는 하나님께서 능력을 행하시지 않는다는 말인가? 즉 이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공의의 하나님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공의의 하나님으로서는 하시면 안되는 일이지만, 그 인간을 사랑하셔서 구원하고자 하시는 딜레머에 빠진 하나님과 같은 형상이다. 죄에 빠진 인간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자신을 희생하셔서 속죄함으로 구원의 길을 여셨다고 하지만, 당신의 자녀를 보호하는 것은 좀 더 복잡해 보인다.

 

그런데, 일단 우리의 시각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성도에게 형통, 축복, 은혜라는 것에 대한 시각 교정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가 당하고 싶지 않은 사건들, 예를 들면 사고, 가난, 불행, 고통, 아픔, 슬픔, 환란, 고난 이런 것들이 형통, 축복, 은혜와 반대 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육신' 의 기준으로 보는 축복 된 삶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영혼' 의 구원을 이야기 한다. 따라서 영적인 기준에서 축복 된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야 하지 할 것이다.

 

만약에 '육신'의 기준으로 보는 축복 된 삶이 맞는 것이라면, 초대교회에서 요한을 제외하고 모든 제자가 순교를 당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콜로세움에서 숱하게 순교를 당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니... 오히려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은 그들이 신앙의 순결한 선배로서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신앙생활을 좀 한 사람들은 꽤 자주 들어온 것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육신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자꾸만 그쪽으로 끌려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바울도 '곤고한 자' 라고 고백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폭탄테러에 의해서, 순교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죽음 자체가 허무한 것은 아닐 수 있으며, 오히려 이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말하고 계신가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것인가?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해 주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원망할 것인가?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해 주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원망할 것인가?" 이 질문에는 공분의 질문일 수도 있지만, 그것 보다는 "내가 위기에 빠질 때 하나님은 나를 보호해 주실 것인가?" 라는 내 주관적인 질문이 담겨 있지는 않는가? 그리고, 하나님을 나의 "수호신" 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어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나의 형편과 나의 형통을 보장해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어쨌든 그것은 각자에게 물어봐야 할 부분이다.

 

폭탄테러의 사고로 돌아가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사회(전 지구를 포함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가 다르다고, 이해관계가 다르다고, 나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서 상대편을 해하는 사회는 지극히 이기적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라." 라는 이타적인 인간이 되기를 우리에게 끝없이 말씀하고 계신다. 그것만이 사회를 개혁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계획이시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1) 우리나라만 잘살아서는 안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2) 우리가 그들에게 이기적으로 행한 것은 없는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우리 국민을 죽였다고 보복을 생각하는 것은, 그들과 똑같은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피는 피를 부르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바로 미국의 예!)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은 보호를 받을 수 없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분명이 우리를 보호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살아내고 있다면, 하나님은 내 발의 등이시므로 절대적으로 안전하게 보호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단서가 하나 있다. 내 발 아래를 비치는 위험한 것을 인식하고 피해갈 것을 선택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하나님은 강제적으로 안전한 곳으로 이끄시는 분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유의지를 가진 나에 대한 축복이다. 

 

그렇다면, 성도는 늘 하나님의 말씀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종종 그렇지 못하는 경우 (아니 대부분에서) 가 발생한다.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이라면, 잘못 발을 내딛으면, 앞에서 이야기한 환경적인 문제를 통하여, 잘못 들어섰음을 깨닫고 길을 돌이킨다. 만약에 그 사람이 계속해서 잘못된 길을 갈 경우, 하나님은 다른 영적으로 소통하는 사람을 통해서, 도움의 길을 보내실 수도 있다. (이것은 시간적, 지리적 거리감이 문제로 적 시에 못할 수도 있다)  개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고자 할 때, 부족한 인간이라, 하나님의 인도를 못 받는 위험성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위험성을 피하는 95% 이상의 확실한 방법을 주셨다. 그것은 영적인 신실한 공동체에 거하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방법이다. 즉 자신에게 발생한 여러가지 어려움을 서로 나눔으로서, 다른 분들의 고난에 동참하며, 은혜를 나누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적인 가이드를 공유하는 것이다. 즉 어떤 선생에게서 가르침을 받는데,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것에 대해서, 여러사람이 분별력있게 메시지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공동체는 단순히 영적인 분별력을 구하는 것은 물론, 영적으로 미숙한 사람을 이끌어주고, 실질적인 육신의 도움을 나누어주는 역할도 같이 진행할 수 있다. 이것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교회' 이다. 주님께서는 2-3사람이 모인 곳에 나도 거하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길게 설명을 하였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납득이 될지는 모르겠다. 폭탄 테러로 순교하신 분들, 비통한 일이며, 남겨진 분들에게 위로를 드리고, 슬픔을 나누고 싶다. 이 일로 인해서 가장 슬퍼하실 분은 하나님 이심은 분명하다. 그분의 마음을 나도 느끼고, 그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들과 같은 방법이 아닌... 그들의 분노를 잠재우고, 보듬어주는 용서와 사랑이 그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쓴 글에 대하여, 혹자는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당신이라면 그 자리에 있겠느냐고?"

 

그 질문에 대하여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할 때, 나의 자발적 의지가 아니면, 기쁘게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신앙인은 평생을 통하여 성숙해 가야 하는 것이고, 내가 하나님의 입장에서 뭔 가를 하겠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바꾸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자발적 의지로, 나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그것은 고통이나 환란이 아닌 기쁨으로 받게 될 것을 믿는다.

 

물론 불의한 어떤자의 테러로 그자리에서 당한다면... 그거야 불의한 사회시스템을 방치한 우리 모두의 책임으로 받을수 밖에 없겠지만... ㅠ.ㅠ

 

- 겨울아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