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겨울아찌 2009. 12. 27. 22:33


M 교수님이 키우시는 "명자나무"


제 아내는 10년전에 종이접기를 배워서, 그 외길을 달려온 사람이다.

별것 아닌듯한 종이접기로 아이들과 주부를 대상으로 가르치면서, 종이접기가 단순히 무엇을 만든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종이접기가 아이들의 창조적 심성을 계발하고, 지적장애아들의 치료에 이용될수 있음을 알게 되면서, 아내는 근처의 D 대학교의 평생교육원에서 미술치료 강의를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지적장애아 들을 정식으로 치료할수 있는 자격인, 미술치료사의 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하여, 공부를 했지만, 그 수업을 진행하는 중에,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과, 치매노인들의 미술치료, 지적장애아들의 수업에 조금씩 응용하면서, 미술치료의 깊이가 또한 무한함을 깨닫게 되었다.

D 대에서의 수업이 끝나고, 자격증도 획득하기는 했지만, 1년동안의 평생교육원의 수업으로는 아이들을 미술치료를 한다는 것이 터무니 없이 부족함을 느낀, 아내는 C 대의 평생교육원의 미술치료에도 수강하게 되었다.

그러나, C 대에서의 평생교육원의 수업은 D 대에서의 수업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았으며, 크게 발전된 내용을 발견하지는 못했었다. 그렇게 수업을 진행하던 와중에, 담당교수가 팔을 다치는 바람에, 강의를 할수가 없어서, 그분의 위촉으로 K 교수님이 대신 강의하러 오셨는데 (말하자면, 땜빵하러 오신것) 아내가 이분을 보는 순간, 범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으며, 강의하는 시간내내, 이분의 강의에 폭 빠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이분의 첫 모습은, 화장도 거의 안한 얼굴에, 옷은 완전히 시골 아낙네 정도의 복장으로 전혀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강의를 하러 오셨으며, 강의 시작을 자신의 생활을 거의 다 드러내는 이야기를 하셨으며, 과제물로서 한비야의 "그것은 사랑이었네" 를 읽어오도록 하셨다는 것 이었다.

아내는, 그분의 삶 중의 이야기속에서, 북한산을 등산했던 K 교수님의 이야기에, 동질감을 느꼈으며, K 교수님도 수업중에, 아내가 자신의 미래향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소개하는 시간에서, 아내를 어느정도 알아봤던 모양이었다.

아내는, 수업에서 돌아온날 저녁에 나에게 K 교수에 대하여 흥분된 어조로 이야기를 했으며, 아내의 표정과 말을 통해서, 나도 범상치 않은 인물을 만났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더불어, 그분이 권한 한비야의 "그것은 사랑이었네" 도 나도 읽어보게 되었으며, 책을 읽어보면서, 이 책을 권한 K 교수님에 대한 나의 관심도 커졌다. 한비야를 나도 알고는 있었지만, 우연하게 읽어봤던, 국토 종단 여행기에서 그냥 단순한 여행기로 읽혀졌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한비야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K 교수님이 권한책은 내가 그동안 갖고 있었던, 한비야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깨트리는, 알토란 같은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신앙간증문과 같은,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의 매일이 놀라운 삶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며, 한비야가 나나 아내와 같은 동년배의 인물임을 알게 되면서, 나는 무엇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이 책을 원한 K 교수에 대한 관심은 커져갔다.

아내는, 두번의 수업을 통해서, K 교수님이 자신의 삶에서 주요한 인도자가 될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으며, K 교수님을 따로 만날 생각으로 그분의 연락처를 받아놓았으며, 그분도 아내를 관심있게 생각하여, 방문하라는 약속을 해주셨다고 한다.

만날 약속을 한 날은 2009년 12월 26일 토요일 오후 였었다. 아내가 혼자 가기에는 잘 모르는 길이고, 또 나도 관심이 있었기에 같이기로 했다. 옷을 챙겨입는 아내에게, 전원주택이나, 일반주택 일 것 같으므로, 추울지도 모르니, 단단히 챙겨입도록 조언했다. 알려준 주소로 네비게이터의 안내를 받아 갔는데, 작은 마을이었다. 네비게이터는 교수님의 집일 것 같은, 괜찮은 집을 지나쳐서, 산 중턱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올려다 보니, 비닐하우스만 보이고 있었으며, 그 산중턱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에는 입구에는 소형차(마티즈)가 막고 있어서, 주변을 돌다가, 찿을수가 없어 전화를 했더니, 그 비닐하우스에서 빨간옷을 입은 분이 나오는 것이, 멀리 보이면서, 그곳이라고 했다.

차가 막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K 교수님의 남편이 차를 막아 놓은 모양이라고, 그 차의 뒤에 대어놓고 올라오면 된다고 말했다. 차를 뒤에 대고 올라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머리와 수염이 허연분이 나오시더니, 차를 빼줄테니 올라가라고 하셨다. 그러더니, 그 마티즈를 몰고 위로 올라가셨다. 직감으로 아마 K 교수님의 남편인가 보다 했다.

따라서 올라가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예상대로 K 교수님과 남편인 M 교수님이셨다. 집은 어딘가 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하게, 비닐하우스 뒤편에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집이 그분들의 살림집 이었다.

들어오라고 하면서, 비닐하우스 두동을 거쳐서, 인도를 받아 들어가면서, 병환으로 누워계신 어머님이 계시다는 말씀에 돌아보니,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큰 방한켠에 거동이 어려운 할머님이 계셨고, 집안에는 강아지가 두마리, 그리고 살림살이가 어지럽게 쌓여있는 집안이 M 교수와 K 교수가 어머님과 생활하는 집이었습니다.

그래도, 명세기 교수님들인데, 번듯한 전원주택이나 그도 아니면, 일반주택을 상상하고 갔던, 우리는 내심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런 열악한 주거환경에 내심 놀라고 있는데, K 교수님과 M 교수님은 자신들의 그런 환경을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전혀, 개의치 않은 자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그분들은, 추운 날씨에 손님이 왔으니, 개스 히터를 틀어주신것 같은데, 샌드위치 패널의 집이니, 바닥으로 한기가 파고 들었습니다.

집안을 둘러보는 우리들에게 K 교수님은 먼저 어머님을 소개하면서, 91세의 어머님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그런 그림을 그린 어머님을 매우 자랑스러워 하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개가 2마리가 있었는데, 그냥 보기에도 둘다 정상적인 개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 개를 소개하는데, 한마리는 14살, 한마리는 20살이라고 소개 했다.

그말에 나는 경악할수 밖에 없었다. 보통 개의 수명은 12년 정도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0살만 되어도, 정상적인 개들을 찾아보기 어려운데... 14살, 20살 이라니.... 그 개들은 이미 이빨이 모두 빠지고, 눈은 안보이고, 20살인 개는 척추도 휘고, 정상적인 보행을 할수 없는 개였다. 그러나 K 교수님은 그 개를 끔찍히도 돌보고 있었으며, 그분이 그 개를 대하는 모습에서, 인생의 오랜 기간을 같이해온, 가족 이상의 정성을 쏟고 있음을 알수가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할머님이 잠깐 나가셔서 K 교수님이 할머님을 수발하러 나간 사이에, 남편인 M 교수와 아내가 서로 보더니, 아내가 M 교수님을 보고서, 어디선가 본듯하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M 교수도 어디선가 본듯하다고 두사람이 서로 고민을 하면서, 여기 저기 만났음직한 장소를 이야기 하다가, 아내가 수업을 나가고 있는 하호분교에서 두 사람의 탐색이 일치했다.

약 2년전에 M 교수는 하호분교에서 숲속체험의 수업을 진행했고, 그때 아내가 처음 종이접기 수업을 들어가면서, 그 곳에서 만났던 것이었다. 참 세상은 좁고, 인연의 오묘함을 느낄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K 교수도 그런 인연에 놀라워 했다.

아내는 K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삶에 어떠한 선택을 해야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공부를 해야하는지의 이야기를 잡아가는 듯 했다.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두분의 삶에는 하나님이 있었으며, 그것은 우리도 공감하는 부분이라서 더욱더 친숙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M 교수가 밖으로 나가길래, 나도 좀 지루해져서 따라 나갔더니, M 교수는 이곳 비닐하우스에서 어떤일을 하는지, 자신이 가꾸고 있는 자연의 세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자신의 작업 공간과, 이곳을 어떻게 꾸미고자 하는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 과정에서 한번더 충격을 받았는데, 자신의 작업공간이라고 보여주는곳이, 수도가 나오는 곳과, 나무 토막을 잘라서 원형으로 배치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몸을 씻고, 필요한 작업을 하는 가장 만족한 공간이라고 소개를 하는데.... 무소유의 실체를 보는듯 했다.

다시 아내와 K 교수의 이야기를 하는 곳으로 돌아왔는데, 벌써 이곳을 방문한지 3시간 여가 되어가고 있어, 바깥은 어두워 지고 있었다. 아내는 전혀 시간 가는줄 모르는 듯한.... 몇번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며, 이야기를 끝내고자 종용했으나, K 교수와 아내는 거의 눈치를 채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엇다. 결국은 K 교수의 어머님이 "배가 고픈듯 한데..." 하는 말씀에, 화들짝 놀라서, K 교수와 아내는 이야기를 끝내야 했다.

두분께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나오는 길은 곤지암 스키장과 연결되는 길로, 스키를 타고 돌아가는 사람들과, 스키를 타러 들어오는 사람들의 고급승용차로 정체가 되는 길 이었다.

너무나도 대비되는 M 교수와 K 교수의 삶은 정말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산을 오랫동안 다녔었고, 산에서 산장지기를 하시는 분들... 그리고 전원의 삶에서 물질적인 삶에서 자유롭고자 하시는 분들을 제법 많이 접했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M교수와 K 교수처럼, 그런 소유에 대하여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자유로우신 분들은 처음으로 만났다. 이 분들을 만나면서, 우리가 노년기에 꿈꿨던 생활도 얼마나 욕심으로 점철된 삶이며, 욕심을 버리지 못한 삶인지 느낄수 있었다.

아내는 K 교수를 자신의 삶에서 지도를 받기위하여, 정기적으로 만날 약속을 얻어내기는 했지만, 자신의 성찰이 필요하다는 크나큰 과제도 받아서, 적지않게 부담스러워 했다. 나 역시, 진정한 자유로운 삶이란 어떤 것 인지, 엿볼수 있는 기회 였으며, 지속적인 공부를 해야할 필요성은 느끼는 시간이었다.

- 겨울아찌 -